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소소한 여유

독일 부부 작가의 작품 경계 2018

스페이스K 서울에서  'Flowers on the Border' (경계에 핀 꽃) 라는 주제로 독일의 부부 작가 '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의 전시가 2022년 1월 26일까지 진행중이다.

 

작가 네오 라우흐(오른쪽)와 로사 로이가 공동 작업한 신작 경계, 2018

부부 작가인 '네오 라우흐'와 '로사 로이'는 같은 지역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결혼 후에는 스튜디오를 공유하는 등 많은 시간을 함께해 온 부부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네오 라우흐'의 경우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신비로운 주제나 서사를 선보이고 '로사 로이'는 동시대 여성의 역활에 초점을 둔다. 

 

'경계, 2018'은 두 부부 작가가 서로 탁구 경기를 하듯 번갈아가며 캐릭터와 배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지금까지 부부의 공동 작업은 다섯 번 정도 해 봤다고 한다.

 

우리 둘 다 이 작업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재밌는 놀이처럼 여겼다
한 사람이 질문을 던지면 상대방이 답을 하는 과정이 놀랍고 흥미로웠다

 

 '네오 라우흐'는 라이프치히 미술대학 졸업 후 줄곧 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고도로 숙련된 테크닉으로 미스터리한 장면을 묘사하지만, 서사나 의도가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더욱이 구상과 추상이 혼재되어 있어 사물간의 개연성은 모호함을 더한다.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악한 환자, 2012 by 네오 라우흐

왼편의 황량한 벌판의 나무와 오른편의 병상을 둘러싼 인물들이 묘하게 대비된다. 이러한 대조는 선과 악, 건강함과 병약함, 몸과 영혼 등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간접적으로 은유한다. 수수께기 같은 상황과는 별개로 생동감 넘치는 구름의 모습과 바람에 움직일 듯한 나무의 형상은 '네오 라우흐'만의 탁월한 회화 테크닉을 발견할 수 있다.

 

프로파간다. 2018 by 네오 라우흐

과거 독일은 예술가와 예술에 '선전'이라는 의무와 책무를 끊임없이 부여해온 역사가 있다. 선전은 명확한 메시지를 위해 통제로 가득하지만, 작가의 회화는 이와 반대 방향을 추구한다. 이를테면 다양한 인물, 시대적 의상, 역사적인 배경의 오브제를 화폭에 담지만 풍경과 인물의 크기를 다르게 하거나 본래의 색감을 벗어난 톤으로 논리적 흐름을 방해하는 식이다. 이렇게 화면에 등장하는 물체들의 개연성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키는 전략은 특정한 메시지를 삭제해 회화 자체 의미에 충실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모호함이 오히려 관람객의 상상력을 더욱 증폭시키는 장치로 활용된다.

 

내 그림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지만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린 눈과 마음으로 아름다움을 즐기기를 바란다

 

 

'로사 로이'는 독일 작센주 츠비카우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원예학을 전공한 뒤 라이프치히에서 본격적으로 예술을 공부했다. 작가는 다양한 역할의 여성 형상을 전면에 내세워 꿈과 역사, 혼재된 내러티브, 환상을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인다. 무엇이든 변화 가능한 여성을 묘사하는 작가는 동시대의 여성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

 

팽이, 1999 by 로사 로이

붉은색 옷의 두 여인이 등장한다. 한 명은 팽이놀이에 심취한 모습이며, 다른 한 명은 관심 없다는 듯 관객을 바라본다. 이와 같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모습과 행위의 두 사람은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만유인력, 2004 by 로사 로이

노란색 옷을 입은 두 여인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두 여인 중 한 사람은 물리적 현상을 그린 칠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 칠판을 던져 버리려는 반대편 여인의 행위가 묘하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로사 로이'의 작품 속에 도플갱어 혹은 쌍둥이 형태로 등장하는 이 여성들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언제나 반대편에 위치한다. 어쩌면 이들은 분열된 정체성을 상징하거나 충돌하는 두 자아의 균형일 수도 있겠다.

 

동독에서 자랄 때 여성이 더 자유롭고 평등했던 경험 때문에
남성과 여성의 인권이 동등한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여섯 살 때 도시로 이사하면서 친구들을 잃어버렸다
그림 속 여성들은 상상 속 친구이자 또 다른 나의 자아이다.

 

이 외의 여러 작품이 전시 중이며, 오디오 가이드북을 들으며 조용히 전시를 관람하기 좋은 곳이었다.

2층에 올라가면 '네오 라우흐'의 작품 하나가 전시 중인데, 해당 작품도 놓치지 말고 관람해 보자.

또한, 독일 부부작가의 인터뷰 영상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2층에 마련되어 있다.